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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사회복지협의회 이사직 탈퇴에 쓴 글입니다.

법은 있는데, 의제는 없다 왜 지역사회는 노숙인을 말하지 않는가

법은 있는데, 의제는 없다 왜 지역사회는 노숙인을 말하지 않는가 이임경

노숙인복지법은 엄연히 존재한다. 노숙인은 법적으로 보호의 대상이며,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무 아래 놓인 사회복지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노숙인 문제는 좀처럼 공식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지역보장협의체와 사회복지협의회라는 이름의 공적 테이블에서, 노숙인은 늘 주변부에 머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해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사회 복지 논의는 대상 인구가 많은 순서대로, 그리고 조직화가 잘된 영역일수록 더 큰 발언권을 갖는다. 노인, 아동, 장애인 영역은 수백만의 인구를 기반으로 촘촘한 시설과 단체, 예산과 인력, 그리고 오랜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이 구조 안에서 의제는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권익은 정치적 힘을 갖는다. 그러나 노숙인은 다르다.

전체 규모는 1만 3천 명 남짓, 시설은 많지 않고 지역에 상시적으로 뿌리내린 조직도 희박하다. 무엇보다 노숙인 정책의 목표는 ‘시설 확대’가 아니라 ‘시설을 벗어나 지역으로 정착하는 것’이다. 성과는 눈에 띄는 증가가 아니라, 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특성은 지역협의체가 작동하는 방식—시설 유지, 사업 확장, 예산 확보—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노숙인 문제는 법적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이익 구조로 환원되기 어려운 의제가 된다. 의제를 올리는 순간, 책임의 화살이 지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주거, 의료, 정신건강, 갈등 관리까지 모두 지방정부의 책무로 확장된다. 그래서 가장 쉬운 선택은 침묵이다. 다루지 않으면 책임도 없다. 이 구조 속에서 노숙인 문제를 제기하려는 사회복지사는 망설이게 된다.

의제를 꺼내면 회의장의 공기가 싸해지고, “아직은 시기상조다”, “사례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회의록에는 남지 않고, 다음 회의에서는 사라진다. 반복되는 이런 경험은 문제 제기자를 고립시킨다. 이는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구조적 압력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질문이 생긴다. “내가 굳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할까?” “지금 관리하고 있는 노숙인 출신 대상자의 지역 정착에, 협의회 활동이 정말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협의회를 ‘해결의 공간’으로 기대할수록, 소진만 커진다는 점이다. 대신 협의회는 ‘정치적 자산’을 확보하는 최소한의 통과 지점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전략은 명확하다.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 설득하지 않는다. 토론하지 않는다. 대신 기록을 남긴다. 회의당 한 번, 30초에서 1분. 감정이나 가치가 아니라 데이터와 사건, 행정 리스크의 언어로 발언한다. 그리고 반드시 문서를 남긴다. A4 한 장의 문제 제기 메모, 회의록에 찍힌 한 줄. 그것이면 충분하다. 더 중요한 전략은 언어의 전환이다.

‘노숙인 문제’라는 표현은 협의체에서 즉시 방어 기제를 불러온다. 대신 ‘주거취약 1인가구 사망 예방’, ‘연락두절·고립 위험 가구의 안전확인’, ‘출소·퇴원·주거이동 전환기 관리’라는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집단이 아니라 위험, 정체성이 아니라 결과로 말할 때, 의제는 통과된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다. 우회다.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잠시 내려놓는 것은, 노숙인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실제로 반복되는 고독사, 응급의료비, 무연고 장례는 이미 지역의 문제다. 다만 그 문제를 ‘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뿐이다. 결국 협의회 활동의 의미는 여기 있다.

현장을 바꾸는 곳이 아니라, 정책으로 넘어가기 위한 흔적을 남기는 곳. 기대는 낮추되, 명분은 확보하는 공간. 중심 무대는 연구와 사례, 정책 제안과 입법의 장으로 옮기고, 협의회는 그 길목에서 이름과 기록만 남기는 장치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답이 나와 있다. 노숙인을 살렸고, 이주시켰고, 지역에 정착시켰다. 때로는 죽음을 통해 제도의 한계를 기록했다. 이제 더 이상 인정받기 위해 머물 필요는 없다. 다만 공식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잠시 들를 뿐이다. 노숙인 문제는 지역협의체가 다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하기에 외면되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전략은 분명하다. 인정받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회해 표준을 장악하는 것이다. 법은 이미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침묵을 깨는 방식의 정치다.